‘나 ML 출신’ 자존심만 앞세우면 ‘독’…열린 자세로 배우고 팀에 녹아들어야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

⑤ ‘용병’의 성공방정식

[선동열의 야구, 이야기] ‘나 ML 출신’ 자존심만 앞세우면 ‘독’…열린 자세로 배우고 팀에 녹아들어야

나도 한때는 ‘용병’이었다. 1996년부터 네 시즌 동안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드래곤스의 용병이었다. 2005년부터는 KBO리그에서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용병을 스카우트하고 기용하는 일을 하게 됐다. 오늘은 ‘용병’이라고 불리는 외국인 선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996년 일본 진출 첫해, 내가 부진에 빠지자 일본 야구 전문지 ‘주간베이스볼’이 분석에 나섰다. “컬처 쇼크라고 하는 두꺼운 벽에 막혀 발버둥 치면서 힘들어 하는 한국의 국보. 가슴 앞에서 모아 몸으로부터 글러브를 떨어뜨린 채 들어가는 세트 포지션이 문제다. 쿠세(투구 습관)가 읽혀 던지는 구질이 드러난다.”

슬라이드 스텝도 문제였다. 이렇게 문제가 드러날 정도였다면 새롭게 일본 야구를 이해하고 배우겠다는 자세로 나섰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자존심이 앞섰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함께 고쳐 나가자는 코칭 스태프의 제안이 있었지만 자꾸 다른 감정이 앞섰다. 결국 엄청난 좌절 속에 시즌을 보내야 했다.

지금도 당시 주니치의 호시노 센이치 감독에게 감사하고 있다. 호시노 감독은 나를 기다려주었다. 충격 요법도 있었지만 최대한 내 자존심을 존중해가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했다. 때로는 선발로까지 투입해 컨디션을 찾아보게 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무엇보다도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국에서 온 용병에 대한 최상의 배려였다.

올해 KBO리그에서도 외국인 선수 교체 바람이 한창이다. 디펜딩 챔피언 KT에서 시작된 교체의 움직임이 중위권 싸움과 맞물리면서 더욱 빨라지는 느낌이다. 이런 때면 약 30년 전 용병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감독 시절에 경험했던 용병 스카우트와 운용에 대한 기억들도 여러 면에서 반성과 함께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용병에 대한 성공 방정식이 존재할까. 성공하는 외국인 선수의 필수 공통점이 세 가지 존재한다.

첫째는 문화에 대한 이해다. KBO리그 수준이 높아지면서 외국인 선수의 수준 또한 따라서 올라갔다. 사실 실력은 어느 정도 검증된 선수들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일본에서 그러했듯이 한국 야구에 대한 이해가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에는 미국식 야구가 있고 한국에는 한국에서 통하는 야구가 있다. 한국 야구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 야구의 시스템을 습득하려는 노력이 성패를 가르는 첫 번째 요소다.

둘째는 배우려는 자세다. 겪었던 외국인 선수들 중 ‘나는 메이저리그 출신이야’를 강조하는 선수가 있었다. 외국인 투수가 오면 때로는 번트 수비나 견제동작, 슬라이드 스텝 등에 대해 새로 가르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갖고 있는 투구 습관을 체크하고 교정할 필요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받아들이고 교정하려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한국 야구로부터 받은 지적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벽을 쌓는 선수도 있다. 새로운 야구에 대한 학습의 태도, 진지하게 배우려는 태도야말로 성패를 가르는 요소다.

셋째는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결국 인성의 문제다. 열린 자세, 함께하려는 자세다. 야구는 단체 경기다. 프로야구는 개인 기록이 출발점이지만 원팀을 지향하는 공동체 정신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스포츠다. 함께 어울리며 자신의 장점을 한국 선수들과 나누고, 한국 프로야구의 장점을 흡수하려는 열린 인성이 성패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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