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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증가 1위’ 도시 서울
1995년 7월 서울보다 북쪽에 위치한 미국 시카고에 유례없는 폭염이 덮쳤다. 일주일 만에 이 도시에서 739명이 사망했다. 사상 최대의 폭염 참사였다. 그날의 시카고 여름은 지금의 한국 상황을 반추하게 만든다.서울은 기상 관측 이래 2018년이 가장 더웠다.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폭염 일수가 35일이나 됐다. 두 번째로 더웠던 1994년엔 29일이었다. 올여름도 심상치 않다. 지난 19일 서울의 기온은 35.7도까지 오르며 6월 중순 기준 75년 만에 가장 높았고, 21일 서울에선 관측 이래 가장 이른 첫 열대야가 나타났다. 이러다 서울에서도 최저기온이 30도가 넘는 ‘초(超)열대야’를 경험하게 될 것 같다.통계상으로만 봐도 서울은 점점 더워지고 있다. 27일 영국 국제개발환경연구소(IIED)가 분석·발표한 전 세계 주요 대도시별 폭염 추이에서 최근 30년간 가장 가파른 폭염 증가세를 보인 도시는 서울(7360%)이었다. 이 기간에 73배나 늘었단 뜻... -
달의 뒷면
달의 뒷면은 영어로 오랫동안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이라 불렸다. 사람들은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달의 뒤편은 어둠에 휩싸여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1955년 디즈니의 TV 애니메이션에서 미래의 우주인이 달의 뒷면에 불꽃을 떨어뜨려 밝혀주는 에피소드가 나올 정도였다.보이지 않아서 알 수 없는 것은 불안함과 두려움을 자극한다. 이 때문에 달의 뒷면은 노래·영화·시같이 수많은 창작물의 소재로 쓰여왔다. 제목 자체가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인 1990년작 SF 공포영화는 고장난 우주선이 달의 뒷면으로 끌려가 초자연적인 어둠의 힘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프로그레시브 록그룹 핑크플로이드의 앨범일 것이다. 소외, 편집증, 광기, 죽음 등 인간의 불안한 심연을 노래한 이 앨범에는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이란 제목이 붙었다. 신경을 자극해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선율이 6~7분씩 ... -
19세 청년 노동자의 ‘쓰러진 꿈’
2016년 5월28일, 서울 구의역에서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군(19)이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스크린도어 수리는 2인1조로 해야 한다. 1명이 열차 진입 여부를 감시하고 나머지 1명이 작업해야 안전하다. 그러나 김군은 혼자 작업하다 변을 당했다. ‘고장 접수 1시간 이내 현장 도착’이라는 원·하청 계약에 맞춰 작업하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김군 가방에선 미처 먹지 못한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이 발견됐다. 이 컵라면은 청년노동자의 고달픈 노동을 증언했다.2018년 12월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씨(24)가 석탄 운송용 설비를 점검하다 컨베이어에 끼여 숨졌다. 점검구 보호 덮개를 닫고 2인1조로 작업해야 했지만 어느 것도 되지 않았다. 작업장에선 컵라면, 탄가루 묻은 수첩 등이 발견됐다. 김씨의 생전 사진이 특히 강렬했다. 작업복, 작업모, 방진마스크 차림의 김씨가 “비정규직 이제는 그만 / 문재인 대통령, ... -
‘스마일 골퍼’ 양희영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무대에서 뛰는 양희영은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여섯이다. 그의 하얀색 모자엔 ‘스마일’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통상 메인 후원사 로고가 있는 자리지만, 그게 없는 탓에 지난해 스스로 새겨넣었다. 그래서 ‘스마일 골퍼’로 통한다. 문양대로 17년 프로 생활 동안 편안한 날보다 힘든 때가 더 많았지만, 그는 늘 환하게 웃는다.양희영이 23일(현지시간) LPGA 투어 시즌 세번째 메이저대회 KPMG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프로 통산 6번째 우승이지만 메이저 대회는 처음이다. ‘은퇴 전 꼭 하고 싶었던 우승’이기에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양희영에게 눈이 가는 것은 삶을 대하는 자세 때문이다. 그도 호주 골프 유학 중인 17세 때 아마추어 신분으로 유럽투어 ANZ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신동’이었다. 그래서 삼성의 후원을 받으며 2008년 LPGA 무대에 나섰지만 화려함보다는 시련의 시간이 많았다. 잔부상과 부진을 오가다보니 자연스레 후원사는 있다... -
변희수 하사 현충원 안장
“업튼 선생님은 최근 인생을 바꿀 중대한 결심을 하고, 트랜지션(성전환)해서 여성으로 살기로 하셨습니다. 크리스마스 휴가 이후에는, 메도스 선생님으로서 학교로 돌아오실 예정입니다.”2012년, 영국 세인트 메리 맥덜린 학교의 가정통신문이 나간 후 메도스라는 이름이 언론에 앞다퉈 보도됐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나지 않아 그는 자살했다. 학교 측이 메도스를 위해 넣은 이 문구가 그의 죽음을 불러올 거라곤 당시엔 몰랐다.2021년 영국에서 출간된 <트랜스젠더 이슈>에 소개된 이 사례는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당사자들이 마주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을 조명한다. 트랜스 여성인 저자 숀 페이는 다음해 출간된 한국어판 머리말에 성전환 수술을 이유로 군에서 강제 전역을 당한 뒤 목숨을 끊은 변희수 하사의 1주기를 기리기 위해 한국어판을 출간했다고 썼다.변 하사 사건은 기억되지만 그 직전 두 명의 성소수자가 목숨을 끊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2021년 2월8일 이... -
6월 폭염
‘가마솥’이 따로 없다. 아직 6월인데, 전국에서 폭염 신기록이 세워지고 있다. 19일 서울은 35.8도까지 올라 1958년 이후 가장 더운 6월 날씨를 기록했다. 낮 한때 39도까지 오른 경북 경산시처럼 체온보다 기온이 더 올라간 도시도 여러 곳이다. 20일 기상청은 서울에 이틀째 폭염주의보를 내렸다. ‘더위 먹은 소 달만 봐도 허덕인다’는 속담이 있다. 한낮이 너무 뜨겁다 보니 밤에 달만 봐도 놀란다는 말인데, 지금 소가 아니라 사람이 그럴 지경이다.때이른 폭염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국은 북동부·중서부 지역을 덮친 열돔 현상으로 비상이 걸렸다. 그리스는 이달 40도가 넘는 더위가 계속돼, 관광객 6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고 한다. 인도 역시 무더위가 이어져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폭염은 동물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달 멕시코에선 폭염에 지친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잇따라 떨어져 죽었다. 이 모두가 앞으로 점점 더 잔인해질 여름의 예고편만 같다.서울... -
밥은 하늘이다
집회나 농성에 가본 사람이라면, 유희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 대표의 밥차를 기억할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그는 전국 집회 현장을 쫓아다니며 밥을 나눴다. 약자들이 싸우는 곳에서 그의 밥을 안 먹어본 사람이 드물 정도다. 돈은 받지 않았다. 처음엔 ‘장사하러 왔냐’ ‘밥값은 얼마냐’ 묻던 이들도 ‘맛있게 먹기만 해라’라는 그의 한마디에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한진중공업의 마지막 해고노동자 김진숙씨,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도 그를 만났다.유 대표는 서울 청계천에서 노점을 했다. 노태우 정권이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노점상을 집중 단속하던 시기다. 그는 노점상을 싹쓸이하겠다는 정부에 맞서는 투쟁에 뛰어들었다.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씨가 단속으로 손수레를 빼앗긴 후 서울 서초구청 앞마당에서 몸에 불을 붙였다. 1995년 3월21일이었다. 그날 이후 유 대표는 집회 현장에서 밥을 지었다. 최씨 빈소에서 국밥을 끓인 게 시작이었다.유 대표는 가야 할 농성장이 떠오르면 반찬을... -
‘수입만능론자’ 이창용 총재
한국 최고의 이코노미스트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언제부턴가 ‘수입만능론자’가 된 듯하다. 체감물가를 낮추는 방안으로 농축산물 등 생필품의 수입을 또다시 들고나온 것이다. 이 총재는 18일 한은 별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식료품, 의류 등 필수소비재 가격은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어 생활비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이 총재의 해법은 수입이다. 그는 ‘금사과’와 ‘대파 파동’이 일었던 지난 4월에도 “통화·재정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농산물 수입’을 거론했다. 이 총재는 물자뿐 아니라 사람도 수입할 것을 주장한다. 지난 3월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돌봄 인력 부족과 비용 부담에 대처하기 위해 이 일을 이주노동자에게 맡기고 임금을 낮추자고 제안했다.저렴한 해외 상품과 노동력이 들어오면 당장엔 이득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게 마련이다. 해당 분야 산업이 쇠퇴하고... -
‘김건희 논문’과 차기 숙대 총장
기말고사 기간이지만 숙명여대 학생들의 요즘 최고 관심사는 학내 총장 선거에서 최다 득표한 문시연 교수(프랑스언어·문화학과)의 총장 취임 여부다. 최종 결정은 오는 20일 숙대 법인인 숙명학원 이사회가 내린다.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숙대 석사다. 숙대는 김 여사의 미술교육학 석사 논문 ‘파울 클레(Paul Klee)의 회화의 특성에 관한 연구’의 표절 의혹이 불거지자 2022년 12월 본조사에 착수했지만 지금껏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논문 검증’을 공약으로 내건 문 교수가 현 총장인 장윤금 교수(문헌정보학과)를 제치고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다. 문 교수는 총장 후보자 정책토론회에서 김 여사 논문 검증과 관련해 “총장이 되면 진상 파악부터 해보고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정리하겠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96%가 넘는 학생들의 지지를 얻었고, 교수와 동문들로부터도 56~5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김 여사 논문을 살펴본 숙대 교수들에 ... -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머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시복식과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차 닷새간 한국을 찾았다. 방한 이틀째 서울에서 헬기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해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상 악화로 KTX를 이용하게 됐다. 교황은 대전역에서 영접 나온 코레일 사장에게 “헬기가 못 뜨게 어젯밤에 구름을 불러온 사장이군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이튿날에는 앞선 일정이 지연돼 한국 수도자들과의 만남이 늦게 시작되자 저녁 기도와 찬미 순서가 생략되고 곧장 교황이 연설하게 됐다. 교황은 준비된 원고를 읽어내려가다 “오늘 저녁 기도는, 개인적으로 하길 바랍니다”라고 고쳐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2015년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에서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만났을 때도 “한국을 다녀온 지 꽤 돼서 한국어를 잊어버렸다. 통역이 필요하다”는 농담을 던졌다.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과 겸손을 강조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유머를 중요하게 여긴다. 수도자들에게는 딱딱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