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부산’에 야구 영웅 이름을 딴 경기장이 있었으면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

⑦ 최동원 야구장을 기다린다

[선동열의 야구, 이야기] ‘구도 부산’에 야구 영웅 이름을 딴 경기장이 있었으면

1987년 5월16일 부산 사직야구장, 나중에 영화 <퍼펙트게임>의 소재가 된 바로 그 경기가 열렸다. 선발 투수는 최동원 선배와 나. 이 대결은 연장 15회 끝에 2-2 무승부로 끝이 났다. 최 선배는 209구, 나는 232구를 던졌다.다음날 오후 사직구장에서 최 선배를 만났다.

“형, 대단했어요.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만일 16회, 17회까지 넘어가는 경기였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어요?”

“야, 계속던져야지.”

최 선배는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오늘 뭐하냐? 나랑 밥이나 먹자”고 했다.

보통 사람의 시각으로는 조금 이상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승부의 응어리가 남은 채, 그 경기의 상대와 바로 다음날 사적으로 만나 밥을 먹는 게 쉽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최 선배는 달랐다. 그날 밤, 최 선배의 단골 식당에서 단둘이 만났다. 반주로 술 몇 잔을 나누며 어제 경기를 안주 삼았다. “동열아, 몸 관리 잘해라. 투수는 피로가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가버리는 수가 있다. 늘 조심해라.”

그러면서 최 선배 특유의 개성을 한 자락 내비쳤다. “동열아, 그리고 감독이 지시한다고 무조건 따라 하다가는 몸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 늘 네 생각을 갖고 잘 판단해서 훈련하고 등판해라.”

최 선배나 나나 사력을 다한 경기였다. 그런 승부 다음날 내 건강을 걱정하셨다. 최 선배는 그런 분이셨다.

얼마 전 지방선거 때 부산의 한 시장 후보가 “부산에 새로운 야구장을 건설할 때 구장 명칭을 ‘최동원사직야구장’으로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반가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 뉴스를 보며 또 한참 최 선배를 생각했다.

경남 양산에는 현역 야구선수의 이름을 딴 야구장이 있다. ‘강민호야구장’이다. 2013시즌 자유계약선수(FA)로 대박을 친 강민호(삼성)가 큰돈을 기부해 지어진 구장 이름이다.

외국에는 축구선수의 이름을 딴 경기장이 여럿 있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대표적이다. 스페인 축구의 영웅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를 기리는 구장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는 자국의 축구 영웅 주세페 메아차의 이름을 딴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가 있다. 밀라노의 팀들이 홈구장으로 사용 중이다. 네덜란드에도 있다.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의 이름을 딴 AFC 아약스의 홈구장인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다.

‘아버지 부시’로 통하는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당시 백악관 집무실 서랍에 예일대 야구부 시절 썼던 글러브를 보관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걸 꺼내보곤 했다. 예일대 야구팀의 1루수였던 그는 4학년 때 주장을 맡아 전미 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부시를 자랑으로 여긴 예일대는 ‘예일 필드’라 불리던 야구 경기장을 2021년 ‘부시 필드’로 개명했다.

우리는 왜 ‘최동원야구장’이 없을까. 최 선배의 등번호 11번은 롯데의 영구 결번이다. 그리고 그 번호에서 비롯된 매년 11월11일에는 ‘최동원상 시상식’이 열린다. 부산 사직구장에는 최동원 선배의 동상이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그래도 왠지 최 선배의 명예와 업적을 생각하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왜 아직까지 최동원 선배의 이름을 딴 야구장은 없는 것일까.

사람을 기억하고 기리는 방식은 다양하다. 스포츠 영웅에게는 스포츠 친화적인 기념이 필요하다. 사직구장의 사직이라는 이름도 좋지만 야구의 도시 부산에는 야구의 영웅 최동원 선배의 이름을 딴 야구장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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