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의 플랫한 생활. 에필로그
있지만 없었던 세상의 절반, 가려지고 지워졌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응답한다. 언니들의 플랫한 생활은 오롯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 사회가 결혼과 출산으로 한정해놓은 여성들의 선택은 사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훨씬 다채롭고 다양하며 즐겁다.
비혼을 선택했던 여성들이 나이 들어서 같이 사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답은 결국 나답게 살기 위한 삶,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한 또 하나의 선택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세계여성의날#
— 플랫 (@flatflat38) March 5, 2020
국가의 주거 지원은 인구를 늘리는 방향으로 향한다. 결혼을 하지도, 아이를 낳지도 않은 여성들은 정책의 바깥에 있다. “여성 1인 가구들이 연대하려는 건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 플랫 (@flatflat38) March 14, 2020
비혼을 선택했던 언니들이 상상하는 여성들의 공동체는 나답게 살기 위한 삶, 그 조건을 맞추는 또 다른 선택이었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도록, 느슨한 연대의 손을 잡는다. 제도와 정책이 ‘미완성’이라고 말하는 그들이 삶이 외롭다는 것은 편견이며 상상이다. 자신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노력했던, 좋은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던 언니들의 이야기는 가려져 전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지워졌던 그들의 일상을 눈에 보이도록, 존재를 드러내고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정치와 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서로의 존재를 깨우고, 그 존재에 응답한 언니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들의 목소리가 또 다른 존재들을 깨우는 불씨가 될 것이다.
●
by 김보미
그래서 결혼하지 않으면 외롭다거나 결혼하면 외롭지 않다는 것도 편견이며 상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결혼하지 않고 연대하며 즐겁게 살던 사람들과 공동체는 존재했다. 그런 이야기들은 가려져 전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 플랫 (@flatflat38) March 21, 2020
어릴 땐 몰랐다. 세탁, 청소, 요리, 설거지 등 가사부터 시작해서 서로의 삶이 연결되기 위한 감정노동, 돌봄이 사실은 ‘공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대부분의 짐을 엄마 한 명이 머리에 이고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것이 ‘우리집’이라는 혈연 기반의 가부장적 주거 공동체였음을.
서로에 대한 헌신과 돌봄.
인터뷰를 했던 다양한 비혼 여성 삶의 양태를 묶는 가장 큰 공통점이었다. 함께 사는 삶이 유지되기 위해선 끊임없이 교섭하고, 다툼과 화해의 과정이 필요하다. ‘불공평한’ 저울 위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 공동체에서 개인은 행복할 수 없다. 현재 원가족과 동거 중인 30대 비혼 여성으로서, 주거 공동체와 헌신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다.
●
by 김지원
“미친X아!” 아이를 가졌다고 이야기하자 돌아오는 건 축하가 아니었다. “경력 잘 쌓고 있었는데 임신을 하면 어떻게 해!”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라는 지금의 상태는 배우가 되기로 하면서 그가 받아들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 플랫 (@flatflat38) March 26, 2020
“앞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많이 말하려고 해요. 나서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배우 유정민씨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수많은 여성 배우들이 여전히 결혼, 출산을 겪고 무대와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춘다. 정부는 이들의 경력단절을 프리랜서라는 지위 탓으로 돌린다. 여성 배우들이 경력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연습실 안에 놀이방을 만들거나 아이돌보미를 공동으로 구하는 제작사를 만나야 한다. 지인의 선의가 있어야만 양육과 일을 병행하는 게 어디 연극계뿐인가.
나서지 않으면 여성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 사회. 나서도 반영되지 않는 사회. 자신의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가부장제를 부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겐 더 필요하다. 정민씨처럼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세상 밖으로 외쳐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바뀐다.
당신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당신들의 말을 담을 것이다.
●
by 탁지영
‘국회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여성들이 생겨났다. 이들에게 정치는 일상의 연장, 일상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여성들의 존재, 페미니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여성 정당들의 ‘정치판’은 이제 시작이다.#
— 플랫 (@flatflat38) April 2, 2020
아직까지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 정치에 뛰어든 여성들이 있다. ‘왜’ ‘굳이’ 따위 수식어로 여성 정치인의 쓸모를 증명하도록 요구받는 정치판에서 틈을 노리고 싹을 틔우려 한다. 이들은 사회가 여성의 목소리에 답할 때가 됐다고 끊임없이 외친다. 국회 문턱 앞에 고꾸라지고 마는 여성들의 외침을 반드시 국회 안으로 끌고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고군분투가 쌓여 여성의 무대는 넓어질 것이다. ‘여성’이란 이유로 가지 못할 길은 없다. 정치도, 국회도 여성이 누빌 수 있는 무대다. 언젠가 정치 역시 여성이 자연스럽게 발을 딛고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 될 것이라 본다. 그때까지 여성들이 정치판에서 마음껏 실패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곁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
by 김희진
모녀가 또다시 한바탕 싸운 날. 출근한 딸에게 엄마가 문자를 보냈다. “네가 싫다고 해도 영원히 옆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살 거야. 미안하고 사랑해, 딸.”
— 플랫 (@flatflat38) April 23, 2020
딸은 답했다. “나도 미안해 엄마. 저녁에 웃으면서 봐.”#
“나이와 시기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독자가 남긴 문장이 가슴에 박혔다. 가부장제 아래 여성의 자유는 여전히 ‘투쟁’으로 얻어낼 대상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누군가 자유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됐을 때, 우리가 할 일은 그의 옆에 서는 것이다. 여자들은 서로를 홀로 두지 않는다. 연대하고 부대끼며 함께 나아갈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여성이 자유로울 그날까지 함께 걸을 것이다.
●
by 이유진
생각지도 못했던 희귀암 진단과 수술. 3주를 넘긴 입원과 넉 달간 이어진 항암치료. 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꽤 능숙한 간병인이 되어준 정의로운 친구들의 ‘몸의 안부’를 묻는 연대 덕분이었다.#
— 플랫 (@flatflat38) April 9, 2020
‘왜 이렇게 공감이 되지?’
나의 일상과 닮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언니들이 보내고 있는 플랫한 생활에 맞장구를 치고, 감탄하며, 화를 내고 공감했다.
1인 가구가 되어 본 적이 없는 내가 주거 공동체를 생각했다. 부모님의 간병도 고민해 본적 없던 내가 그보다 더 먼 미래, 스스로의 간병을 고민하게 됐다. 비혼이기에 겪어보지 못한 ‘경력단절’과도 어쩐지 가까워졌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언니들의 어떤 이야기도 나와 무관한 에피소드는 없다. 언니들이 조금 일찍 경험했을 뿐, 언젠가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것임을 알고 있다.
한편으론 이렇게 읽는 것만으로도 공감이 되는 여성들의 서사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음에 분노하기도 했다. 플랫한 언니들의 이야기가 모여 나를 바꾸었듯, 가시화된 여성들의 오늘이 다른 여성의 미래를 바꿀 것임을 믿는다.
그저 여성들이 마음껏 경험담을 늘어놓기를, 지겨워질 때까지.
●
by 이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