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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노래잔치
한 번은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지낸 가수 양병집 샘과 얘길 나눴다. 밥 딜런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우리말로 옮기신 분. 내가 2절을 새로 만들어 노래를 녹음하게 되었는데, 부탁을 겸하여… 천국에 가실 때까지 종종 안부를 여쭙곤 했다. ‘소낙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도 양샘이 번안한 곡. 장마통에 노래 ‘소낙비’가 쏟아진다. “무엇을 들었니 내 아들아. 무엇을 들었니 내 딸들아. 나는 비 오는 날 밤에 천둥 소릴 들었소. 세상을 삼킬 듯한 파도 소릴 들었소. 성모 앞에 속죄하는 기도 소릴 들었소. 물에 빠진 시인의 노래도 들었소.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양샘의 음반은 통째 금지곡 신세가 되어 여차저차 처가 식구들이 사는 호주로 이민. 시드니 역전 골목에 좌판을 깔 듯 노상 공연도 했다. 주로 동전을 놓고 가지만 10달러짜리를 노래값이라며 놓기도 하더란다. 일주일에 400~500달러 정도 버셨다던가. 비가 내리면 거리의 악사들... -
몰강물
장마가 시작되자 목마르던 수국이 양껏 물을 마신다. 비에 쓸려나갈 집도 아니고, 비에 떠내려갈 ‘빼빼시’(마른 몸)도 아닌데 어찌 지내냐 걱정들을 하고 그래. “암시랑토 안해~” 답한다. 그럭저럭 정도가 아니라 단호하게, 아주 괜찮다는 말을 이 동네에선 그리한다. “도농놈의 자슥들~ 얼척이 없어가꼬 말이 안 나오네잉” 뉴스를 째려보던 아재가 넘기는 탁배기 한 사발. 찌륵찌륵 비도 내리고 부추전은 구수한 냄새. 인생 탁한 물이 흐르는 듯하면 밝고 고운 벗님 만나서 어둠을 씻는다. 여기선 맑은 물을 ‘몰강물’이라고 해. 몰강물이 하늘에서도 내리고 땅에서도 흐른다. 곽재구 시인의 ‘참 맑은 물살’ 그 시처럼 맑은 물이 쏟아진다. “참 고운 물살 머리카락 풀어 적셨네 (…) 아무 때나 만나서 한 몸 되어 흐르는 눈물나는 저들 연분홍 사랑 좀 봐” 인도에 가면 요가왕 ‘꼰다리 또꽈’, 일본에 가면 쌈박질 잘한다는 ‘깐이마 또까’, 장맛비에 걸어가는 ‘비사이로 마까’도 있다지만 ... -
황금 만능
딸이 결혼을 하겠다며 굴뚝새만큼 작은 남자친구를 데려왔는데 힘이나 쓸까 미덥지 않았던지 아버지가 딸에게 물었다. “저 친구 부모님은 경제 사정이 좀 어떻다니?” 그러자 딸이 대답. “그러니까요. 그 집에서도 우리 집 그 부분이 가장 궁금하시대요.” 경제 사정 황금 두꺼비는 모르겠고 황금심은 좀 아는데, 당신이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나요, 알아주어야 하는 옛 가수 황금심. 대표곡 ‘알뜰한 당신’을 들으면서 여름날 무료함을 나른함으로 바꾸는 중이다. 집에 어디 황금은 쥐꼬리도 없지만 황금심의 옛 노래가 있으니 안심이 된다. 지금부터 딱 백년 전 그때 그 시절, 먼 길을 찾아왔는데 그 사정을 몰라줘. “울고 왔다 울고 가는 서러운 사정을 당신이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나요. 알뜰한 당신은 알뜰한 당신은 무슨 까닭에 모른 척하십니까요.”요청으로 대학생 몇을 데리고 퀘이커의 평화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밤 12시까지 편의점 알바를 하는 친구가 새벽 6시 기상해 그 복잡한 김... -
조용한 코끼리
교향곡이나 록밴드 음악을 듣는 일 빼곤 대체로 조용하게 사는 편. 뾰족하게 굴며 스포츠카를 방방 대는 이웃이 있질 않나 저 건넛집엔 누가 드럼을 배우는지 밤낮 두들겨 팬다. 악기 종류가 색소폰에서 바뀐 모양, ‘삑사리’가 장난 아니다. 하루 몇 차례 ‘산불조심’ 안내방송 차량도 요란하다. 산동네 살면 숯불만 피워도 방화범 취급을 받아. 동물 중에 보면 인간이 가장 시끄럽게 사는 거 같다.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본 코끼리를 기억하는데, 위엄 있고 묵직한 걸음. 거대한 몸집과 달리 눈은 작고 순하게 생겼다. 가까운 동물원에도 코끼리가 살긴 사는데, 타잔을 불러서라도 탈출시키고 싶어. 몸집이 큰 만큼 철창은 얼마나 비좁게 느껴질까.성공회 신부이자 작가 애덤 포드의 책 <침묵의 기쁨>에도 코끼리 얘기가 나온다. “작지만 요란한 물떼새와 다르게 코끼리는 예상 밖으로 너무 조용하단 사실에 놀랐다. 꺼져가는 깜부기불 옆에 앉아 있을 때였다. 덤불 밖으로 무엇인가 나... -
도둑과 수도승
예일대를 나와야 출세를 하는가 봐. 예일대란 그 예일대가 아니라 ‘예전’에 하던 ‘일’을 ‘대대’로 이어가는 출신 말이다. 진짜배기 예일대 졸업생도 입맛에 맞은 직업 구하기가 보통 일 아니지. 또 하버드대를 졸업해서 최근에 행복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된 그 친구 말고는 못 봤다.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스님도 하버드 출신인데 능력이 되지만 승용차 하나 맘대로 못 타. 서울에 사는 스님이나 천주교 수사님을 가리켜 수도에 산대서 수도승 수도자라 부른단다. 산골이나 바닷가에 사는 분들보다 매연을 좀 마셔야 하는 거 빼고는 형편이 대체로 나아. 사람 많은 곳에 맛난 빵이 있고, 외롭거나 우울할 틈도 없지. 성직자도 사람이라서 고립되면 우울증을 앓게 돼. 호주에 친구 만나러 갔을 때 들었는데, 코알라는 장장 하루 20시간을 잠을 자는데, 사회생활 겸 동료와 대화는 딱 20분 정도. 잠순이 잠꾸러기 코알라는 평생 밥그릇 유칼립투스 한 그루면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반대로 기린은... -
국룰
삼겹살 말고 오겹살. 우리들 몸에도 있다. 나잇살이라 불리는 뱃살이 생기면 잘 안 빠져. 그렇다고 비만하지는 않지만 경각심에서 그렇다는 거다. 지실마을 사는 누이가 고기를 구워준다고 해서 친구들이랑 방문. 요들린(스위스 민요 요들을 부르는 여성)인 누이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주로 토끼풀 상추를 위주로 저녁 만찬. 얼짱이나 몸짱은 틀렸고 맘짱이면 족하다 하면서들 오겹살 푹푹 찌는 소릴 외면하는 시간. 인생은 함께 먹고 노래하며 웃을 때가 가장 행복해라. 그래도 꼭 식사 자리에서 살 떨리게 살 이야길 꺼내는 이가 한 명씩 있다. 잘 먹고 놀던 사람 우울하게 겁박하고 면박 주는 안기부 형사님인가.지금은 국정원 그러니까 과거엔 안기부에 맹구가 끌려갔다. 무섭게 생긴 형사가 맹구를 쏘아보더니 “왜, 기분 나빠?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어~.” 맹구가 눈을 내리깔며 대답하길 “안 기분 나빠요. 안 기분 나쁘다니까요.” “뭐라고? 안기부가 나쁘다고?” 그래서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는... -
나이롱환자
어디서 강연을 하는데 한 젊은이가 “체중조절 좀 하고 오께요” 한다. 알아듣지 못해 무슨 소리냐 물으니 화장실 가보겠단 소리래. 나이가 먹은 것도 서러운데 위트 있는 말을 꿀꺽 알아먹지 못하고 감도 매우 물러졌다. 어르신들이 인생의 후회를 보통 3가지 들던데, 좀 더 참을 걸 버럭 화부터 낸 점, 좀 더 베풀 걸 옹졸했던 심보, 좀 더 즐길 걸 일벌레로 지나온 세월이 그것이다. 여기에 보탤 게 수도 없이 많은데, 공부할 때 할 걸 기회를 놓친 일, 유머를 장착하여 웃고 살 걸 마냥 진지충, 고약한 성질머리와 안하무인으로 악명을 떨치는 자들이 장수도 하니 적어도 이 땅은 하느님이 부재한 요지경 세상이렷다.둘러보니 우리 동네 여러 곳 난데없이 펜션이라 써 붙인 건물들이 보인다. 펜션(Pension)이란 말의 어원은 은퇴 후 받는 ‘연금’이라덩만. 유럽의 변두리 산골짝 노인 중에 제집을 고쳐 민박사업을 시작. 며칠 묵으러 온 손님과 말동무를 삼으며 여생을 보내는 방법이 펜션... -
작은 불상
부처님오신날 축하 현수막을 내건다거나 연등을 하나쯤 밝힌 교회당이 있다. 과거 내가 시골 교회에 목사로 부임해 주변 절집 스님들과 친하게 지낸 일들, 낯선 풍경이라 사탄 연탄 번개탄 소리를 얻어들었다. 세상살이 눈으로는 절집이나 교회나 동종 업계이니 피차간 잘되면 좋은 일. 목사가 관대하고 그릇이 크면 신자들 말수가 고와지고 표정도 편안해진다. 적개심을 키웠다간 결국 그 칼끝이 제 몸에 쓱 박히지. 목사가 주의할 3가지가 있는데, 1. 설교를 길게 하지 말 것, 2. 비싼 시계를 차지 말 것, 3. 성경 외에는 아는 체하지 말 것. 한 번은 목사가 설교를 곱절로 길게 하고 마치면서 “교회 뒷벽에 시계가 없어 설교가 길었네요. 암튼 은혜받으신 줄 믿습니다!” 예배 뒤에 ‘물주’ 장로님께서 한마디, “뒷벽에 달력은 그나마 걸어둬서 다행입죠. 날 새는 줄 알았습니다. 내년부턴 다른 교회에서 아주 맘껏 길게 설교하십시요~.” 아무리 좋은 소리도 석자리 반이라 했다. ... -
뜨내기
요샌 잘 안 쓰는 외래어 ‘마도로스’, 바다에서 배를 모는 선원이나 선장을 가리키는 말. 이난영의 노래 ‘목포의 눈물’은 기본이고 그녀가 부른 ‘마도로스의 꿈’도 애정한다. 노래풍이 구닥다리더라도 구수하고 재밌어. “뜨내기 몸이라서 꿈도 뜨내기. 비 나리는 포구에 밤도 깊어서 창 너머 흘러드는 휘파람 소리가 야속히도 내 꿈은 흘러갔구나. 뜨내기 몸이라서 님도 뜨내기. 삼베적삼 재롱에 노니는 님 산 아래 다시는 떠날 건가. 굳은 맹세도 한 방울의 물거품 부질없었네…”엊그젠 뜨내기로 살짝 인천에 다녀왔다. 세월호가 그 밤 출발한 안타까운 항구도 가보고, 친구들과 입술에 춘장을 바르면서 명물이라는 ‘짜장면’도 비벼 먹었지. 바닷가에 살았던 나도 한때는 마도로스 꿈을 꿨다. 그 꿈은 갈매기가 채갔고, 나는 불 꺼진 항구를 바라보며 멍~때리기. 뜨내기손님답게 나는 쓴 커피를 마셨다. 마도로스라면 파이프 담배를 물고 저 멀리 바다를 향해 손짓했겠지. 가수 남일해가 부른 이... -
가랑비야!
이슬비, 보슬비, 가랑비가 촉촉해. 노랫말 속 가랑비를 아는가. 가수 양희은의 대표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김민기 곡 말고 김정신이 작사·작곡한 이 노래도 한때 방송 금지곡.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단 말인가. 가사가 부정적이고 퇴폐적이다.” 당시 금지 사유란다. 그저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였는데. “가랑비야! 내 얼굴을 거세게 때려다오. 슬픈 내 눈물이 감춰질 수 있도록…” 쉬운 기타 코드 때문에, 통기타를 배우는 초짜들이 애창했던 노래. 봄비 내리고 이 노랠 부르다 보면 ‘아침이슬’까지 철야 밤샘을 하게 될지도 몰라. 양희은은 재수생 시절부터 명동의 YWCA ‘청개구리홀’을 들락거렸다. 그곳에선 청년들의 발표회 공연이 열렸는데, 김민기와 양희은 둘도 처음 이곳에서 일면식을 텄단다. 청개구리 공연은 수십년이 지나 김의철 등에 의해 재개되었는데, 나도 가수 김두수형의 청개구리 공연에 무려 찬조 출연을 했다. 명동의 청개구리를 떠난 청년 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