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향포럼

“한국사회는 ‘소금 만드는 맷돌’···승자독식 아닌 ‘초협력’ 필요”

김상범 기자

세번째 세션 ‘분열을 넘어, 화합과 상생으로’

강연자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우리는 ‘경쟁적 민주주의’ 오해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오류 가능성, 불확실성 인정해야”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가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경향포럼>에서 ‘분열을 넘어, 화합과 상생으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가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경향포럼>에서 ‘분열을 넘어, 화합과 상생으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먼 옛날,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마법의 맷돌이 있었다. 한 도둑이 맷돌을 손에 넣었다. 바다로 도망간 도둑은 귀한 소금을 마구 뽑아냈다. 소금 무게로 배가 점점 기울었지만 욕심 때문에 맷돌을 멈추지 않았던 도둑은 결국 맷돌과 함께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양극화와 불평등, 저출산과 고령화. 눈부시도록 발전한 나라의 행복하지 못한 국민들.’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경향포럼> 오후 세션 ‘분열을 넘어, 화합과 상생으로’ 강연자로 나선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부와 성공을 이룩한 한국 사회를 전래동화 <소금 나오는 맷돌>에 비유했다. 그는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악순환의 톱니바퀴, 소금 만드는 맷돌이 부지런히 돌고 있다”며 “초경쟁사회, 승자독식 사회가 대한민국을 침몰시키려 한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의 경쟁은 “우월한 자가 이기고 열등한 자는 패배한다(우승열패)”와 동의어다. 한두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줄세워지는 ‘시험 만능주의’도 그렇게 자리잡았다. 이 교수는 “하지만 개인적 경쟁은 그 사회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짝짓기 경쟁에 이기려고 뿔의 크기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나, 결과적으로 몸놀림이 둔해져 종족 전체가 멸종의 길로 들어선 말코손바닥사슴처럼 말이다.

한국 정치도 그렇다. ‘연립정부’라는 말은 우리에게 낯설다. 이 교수는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41% 득표로 당선됐지만 연립정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0.7% 격차로 당선됐지만 역시 모든 권력을 독점한다”며 “우리는 ‘경쟁적 민주주의’를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경쟁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다. 이 교수는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두 가지 원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는 ‘오류 가능성’이다. 이 교수는 “아무리 훌륭한 정치인도 분명히 오류를 저지른다”며 “그래서 잠깐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모든 권력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불확실성’이다. 이 교수는 “선거 승패가 어떤 방향으로든 예측될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민주주의”라며 “확실성을 추구하는 정치는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이 교수는 “그래서 민주주의는 아름답고 위대하다”며 “불완전한 인간들이 불완전한 제도와 과정을 거쳐 여러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구한말 사상가 유길준이 제시한 ‘경려’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경쟁의 ‘다툴 쟁(爭)’ 대신 ‘권장할 려(勵)’를 사용한 단어로 ‘겨루면서도 서로 격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근대적 경쟁사회를 넘어선 초협력사회, 정치혐오를 넘어 토론·숙의의 공론장이 이끌어가는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경쟁이 아닌 경려의 민주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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