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맛있는 변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식재료의 성분과 조직이 변형되면서 원재료에는 없던 맛과 향이 만들어지고, 독특한 식감도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형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열에너지입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요리는 불을 사용해 완성하죠. 하지만 불이 없다고 해서 식재료의 변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로 발효가 있습니다. 효모와 같은 미생물이 식재료를 먹이로 삼아서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그 과정에서 배출한 물질을 요리에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비록 미생물에게는 배설물이지만 인간에게는 색다른 맛과 향을 얻을 수 있는 아주 유익한 물질이 되는 셈이죠. 예를 들어서 알코올 발효는 발효과정에서 당류가 알코올로 변형된 것입니다.

한편, 발효와 유사한 것으로 숙성(aging)이라 불리는 과정도 있습니다. 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외부 미생물의 대사작용을 이용하는 발효와는 달리, 숙성은 식재료 그 자체에 포함된 효소가 관여합니다. 이 효소의 주된 기능은 식재료를 구성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의 고분자 물질을 더 작은 크기로 분해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육류의 숙성이 있습니다. 도축 후 사후경직이 일어난 육류를 저온에서 일정 시간 숙성시키면, 육류 안 효소의 작용으로 단백질이 분해되는데, 그러면 훨씬 더 부드러운 식감을 갖게 됩니다. 한편, 이러한 분해과정에서 아미노산, 펩타이드와 같은 작은 분자들도 생성됩니다. 이 분자들은 육류의 맛과 향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숙성은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합니다. 세균 등이 번식하면서 부패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선한 육류를 진공 포장하여 4도 이하에서 보관하는데, 보통 소고기의 경우 1주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편 냉장온도를 더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찬물에 담가 숙성시키기도 합니다. 공기보다 물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더 적합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일정하고 균일한 수압으로 육류의 형태와 육즙의 분포를 처음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요즘 고깃집에서 흔히 보이는 워터에이징 설비는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숙성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일은 숙성이 충분해야 단맛이 풍부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숙성된 과일은 물러져 보관과 이동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익지 않은 상태로 수확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바나나는 미숙성 상태에서 신속하게 이동시킨 후 도착지 부근에서 ‘에틸렌 가스’를 이용해 급속하게 숙성시킵니다. 이 가스는 바나나에 포함된 효소들을 활성화시키는데, 이 효소들의 작용으로 탄수화물은 당류로 분해되고, 세포벽은 분해되어 식감은 부드러워집니다.

요리는 불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요리의 전 과정에서 다 불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연은 불이 없이도 요리하는 비밀 레시피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이를 이해하려면 과학이 필수입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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